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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이상

엄마랑 싸움

분하다.

딸로서 나의 가치가 직업으로 정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회사를 때려치고 무직자가 된지 일년이 다 되어가건만 엄마의 동네 절친들은 평일에 집에 와있는 나를 보고 물었다.

"휴가야?"

그럴 때면 엄마는 흠칫 내 눈치를 한 번 봤고 나는 대답했다.

나는 백수라고.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그 땐 일을 그만둔지 얼마 안된 시기였고, 자식이 회사를 그만둔 것을 굳이 친구들에게 상담할 필요는 없지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꽤 흘러 같은 일이 반복되자 어렴풋한 서운함은 확신이 되어 상처를 남겼다.

백수 딸을 소개할 때 엄마는 항상 주춤거렸고 그런 날은 꼭 엄친딸 얘기를 들으며 회사를 그만둔 나의 결정에 대한 엄마의 가혹한 심판을 받아야만 했다. 


웃으며 쌓은 엄마 서운해 마일리지는 어제 만렙을 찍었고, 

그 동안 고분고분하고 예의바르지 않았던 나의 무례는 어제 엄마의 인내 항아리를 넘기고 말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둘 다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분노에 차 서로에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의 소리는 엄마에게 어떻게 말했냐 그게 엄마를 대하는 태도냐 왜 엄마한테 오기를 부리냐가 주였고

나의 소리는 내가 뭘 해도 다 맘에 안들거잖아 바꿔달래서 바꿔준대는데 알아서 바꾸면 또 맘에 안들 것 아냐 그래서 원하는대로 해준다는데 그게 왜 였다.


하지만 나는 내가 뭘 해도 다 맘에 안들잖아 백수 딸 쪽팔리잖아 하고 소리 내지 못했고 

홀로 남은 집에서 엉엉 울며 짐을 싸다가 문득 갈 곳이 없다라는 현실에 부딪쳤다.

이대로 집을 나가면 곧 다가오는 추석에 할머니 댁에서 더 껄끄럽게 마주쳐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외출복을 다시 츄리닝으로 바꿔 입고 조용히 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저녁 때 엄마는 화해의 손길로 보이는 달걀찜을 내놓았지만 나는 밥과 김과 마른 반찬만 후다닥 먹고 일어났다.

오늘 아침 엄마는 바지락 죽을 끓였다.

이상하게도 항상 내 바지락에는 흙이 씹히는데 그 동안은 또야 하며 뱉어내고 그릇을 비워냈는데 오늘 아침은 흙이 바작 하고 씹히는 순간 수저를 내려놓고 남은 죽을 냄비에 부어버리고 일어났다. 


날 창피해하는 엄마가 분하다. 

엄마도 나처럼 어제 소리 내지 못한 것이 있을까?

어쨌거나 얼른 감정 추스리고 뭐 어때 그러시든지 자세로 시크하게 나가야 되는데 걸핏하면 눈물이 퐁퐁퐁퐁.

젠장, 엄마한테 져서 분한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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