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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1000

자기만의 방

누가 돈공부를 위한 책을 추천해줬는데 그 중 문학이 여럿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요약하자면 '여자는 돈이 있어야 된다'라고 소개했는데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그보다 더 알맞은 요약은 없다.

 

 

30 인간의 신체 구조는 심장과 몸, 두뇌가 한데 섞여 있지, 서로 다른 칸에 나뉘어 담긴 게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 몇백만 년이 지나도 그 사실은 변함없을 게 분명하기 때문에, 훌륭한 저녁 식사는 훌륭한 대화를 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답니다. 저녁 식사를 잘못하면 생각도 잘못하고, 사랑도 잘못하고, 잠도 잘 못 자게 된답니다. 쇠고기와 말린 자두를 먹고는 척추 한가운데의 작은 등불이 켜지지 않아요. 우리는 모두 '아마도' 천국에 갈 테고, 다음 길모퉁이를 돌면 반 다이크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랄' 텐데―하루 일과를 마친 뒤 쇠고기와 말린 자두를 먹으면 마음은 이렇게 의심이 많고 깐깐해져요.

식사의 질부터가 중요하다는 가르침!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잘 사는 것.

 

99 돈을 받지 않을 때는 하찮게 여기는 일도 돈을 받는 순간 고귀한 일이 돼요.

같은 물건을 싸게 팔 때와 비싸게 팔았을 때, 싸게 산 사람들이 이런저런 불만과 요구가 더 많았다고 한다.
비싼 값에 구매한 사람들은 오히려 컴플레인이 없었다고.
돈은 종잇조각일 뿐이라고 적절한 가치인지 따져야한다고 하지만 판매자가 정한 가격을 대상의 가치라 철썩같이 믿고, 비쌀 수록 신뢰도가 높다. 
가치를 가늠할 능력이 안되어서일까 귀찮아서일까. 

 

159 상징적 표현을 폭넓게 적용해서 매년 5백 파운드의 수입은 깊게 생각하는 힘을, 방문에 달린 자물쇠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상징한다고 설명해도 여러분은 여전히 마음은 그런 것들을 극복해야 하며, 위대한 시인은 가난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하겠지요. 
161 "우리 시대에는 가난한 시인이 존재하지 않는 게 사실이며, 지난 2백 년을 돌아보아도 가난한 시인은 극히 드물었다.…영국의 가난한 아이가 속박에서 해방되어 위대한 작품을 낳는 데 반드시 필요한 지적 자유를 얻을 가망은 고대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다."    -아서 퀼러-쿠치 경. 『작문론』
바로 이거예요.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좌우돼요. 시는 지적 자유에 좌우되고요. 그리고 여성은 지난 2백 년뿐만 아니라 세상이 열린 이래 줄곧 가난했어요. 여성의 지적 자유는 고대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도 못했어요. 그러므로 여성이 시를 쓸 가능성은 조금도 없었지요. 그것이 바로 제가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하는 까닭이에요.

개천에서 난 개룡남 개룡녀 찾기가 쉽지 않다는 기사가 몇 년 전부터 심심찮게 등장하며 지와 업의 수준이 대부분 부모의 부로 결정되는 요즘의 세태에 대한 걱정과 비관이 팽배하다. 
그런데 100년 전에도 똑같았다니...
세상은 언제나 같은 모습인데 보려는 자에게만 보이고, 보고 싶은 대로 보이는 것 아닐까. 

 

169~170 우리가 앞으로 1백 년쯤 더 살고―개개인의 짧은 삶이 아니라 진정한 삶이라 할 수 있는 우리들 공동의 삶―매년 5백 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을 마련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쓰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쓸 수 있는 용기와 자유로운 습성을 갖는다면, 또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거실에서 벗어나 인간을 서로의 관계뿐만 아니라 현실성과 관계 속에서 바라보고 하늘이든 나무든 모든 사물을 그 자체로만 본다면, 아무도 떨쳐낼 수 없는 밀턴의 악령 너머를 본다면, 또 우리가 매달릴 수 있는 팔은 없으며 혼자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현실성으로 이루어진 세상이지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진 세상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당당히 직면한다면 언젠가 기회는 찾아올 테고, 셰익스피어의 누이동생인 죽은 시인은 스스로 몇 번이나 내던진 육신 속에 다시 깃들 거예요. … 그런 준비 없이, 우리의 노력 없이, 다시 태어난 그녀가 이제는 살아갈 수 있고 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만들겠다는 결심 없이는, 그녀가 오리라는 기대를 품어서는 안 되지요.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타인에게 의지하지 말고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개체가 되라는 말씀. 
등 따숩고 배 불러야 지적 자유가 보장되고 예술이건 문학이건 창작이 된다는 뼈에 새길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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